스크롤압박이 심하지만 읽을 가치가 있는듯

 

꽃게잡이보다 더전망돋는 직업인듯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글을 써보네요.

 

가입 한지는 엄청 오래된거 같은데 여기저기 방황을 많이 해서 그런지... 도통 들릴 시간이 없었네요.

 

그나저나...이걸 자랑이라고 해야할 지는 모르겠는데 드디어 제 마음에 드는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네요.

 

먼저 간단한 스펙을 말씀드릴께요.

 

81년생/군필/

 

2006 8월 전북 *광대 경영졸업/학점 2.97/4.5/

 

토플 114점 (졸업당시 토플 없었음)/ 2006년 인문상경쪽 잡다한 자격증 5개/ 2009년 이후 캐나다에서 취득한 정유안전관련 온,오프라인 자

 

격증 7개

 

2006년 S#(주) 본사 계약직 지인추천으로 입사 후 2007년 3월 간단한 입사시험과 비스무리한 테스트와 함께 S#커뮤니테이션즈 정규직으로

 

발령. 하지만 사무직은 본인과 맞지 않다고 느껴서 퇴사.

 

2007년 미국제약회사 P모사 제약영업사원으로 입사.

 

2008년 7월 캐나다 컬리지 합격통지를 받고 퇴사.

 

미국회사 입사시부터 유학을 결심하여서 1년 6개월 전부터 하루에 7시간 이상 토플공부에 매진.

 

쉬는 날은 하루종일 하였던 것으로 기억함.

 

머리가 좋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받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음.

 

2008년 9월 벤쿠버 랑가라 컬리지 1학년 입학. 대학교 1학년 과목 10과목 이수 학점 3.83/4.33(2연속 Honors roll)

 

2009년 5월 한국학점과 랑가라 컬리지학점을 가지고 캐나다 브리티쉬컬럼비아대학교 영문과 3학년 입학.

 

2011년 7월 졸업 예정 및 네덜란드 정유회사 로얄더치쉘 정유기술직 입사 확정.

 

쓰고보니 뭐... 조금은 복잡한 인생이네요.

 

멀리 돌아왔네요...

 

어차피 기술직을 할거 같았으면 처음부터 전문대에 들어가서 정유기술에 관한 것만 배우고 나와서 일하면서

 

경력을 쌓고 다시 대학에 편입을 하고 대학원도 가고... 박사도 한번 따보고

 

그 다음에 기회가 되면 대학에 가서 강의도 한번 뛰어보고...

 

이래도 되었을텐데 말이죠.

 

학벌을 만회하고자 유학을 결심했고 SAT까지 볼 시간이 없는 바람에 캐나다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네요.

 

대충 토플 100점 만들어 놓고 컬리지 입학해서 편입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벤쿠버에는 있더라구요.

 

80점만 넘어도 컬리지는 입학이 가능한데 제가 학교를 다니고 보니 못해도 토플 100점 정도는 맞아야지

 

수업을 따라갈 수가 있겠더라구요.

 

어쨌든 졸업 후, 해외에서 대학교를 나오면 그래도 좀 나을 줄 알았는데

 

뭐 이건 ㅋㅋ 더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라구요.

 

작년 말에 한국으로 직접 면접을 보러 가기전에 한국의 모기업과 간단히 전화인터뷰를 하던도중에

 

G사에서 인사를 담당하시는 분이 저의 이력을 보더니 도피유학부터 시작해서 기부입학까지 예기가 나오길래 위에서부터 신물이 분비가

 

되는걸 꾹 꾹 눌러 참고 어차피 그냥 아무이유 없이 트집 잡아서 갈구는 면접인걸 알기에 잘 웃으면서 넘겼드랬죠.

 

최종임원면접은 제가 5월에 잠시 방학을 할때 가서 보기로 약속이 되어있었구요.

 

아마 연봉은 4천 후반대를 생각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기술직이니 인센티브가 있는건 당연하구요.

 

그런데 올해 초에 학교로 많은 회사들이 캠퍼스 리쿠르팅을 하러 왔더라구요.

 

입장료 6달러를 내고 들어가자마자 쉘 컴퍼니를보게 되었구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동양사람 같이 생긴 사람한테 말을 걸었는데 한국인 발음이 조금 있는거 같아서 한국말로 얘기를 해보았더니

 

한국사람이더라구요. 마침 그분께서 하는 말이 정유기술직은 일손이 너무 모자라는데 그 까닭이 유학생들이 도저히 힘든일을 하지 않으려

 

고 한다네요. 회사 입장에서는 영어도 좀 되고 합법적으로 캐나다 내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대부분의 유학생은 정장을 입지 않는 일이면 아예 처다보지도 않아서 지원만 하면 들어 갈수도 있을만큼 인력이 매우 귀한게 지금 현실이

 

라고 살짝 귀띔을 해주시더라구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간단한 면접을 보게 되었구요.

 

항상 웃으면서 얘기하고 어눌하고 좋은 못한 발음이지만 똑부러지게 말하는 제 모습이 친화력이 있어보인다고 시내 사무실에서

 

다른 임원들과 함께 얘기를 나워보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속으로는... 에이~ 뭐 되겠나~ 했지만 집에오자마자 회사에 대한 모든걸 다 뽑아서 일주일 내내 전부 다 외워버렸죠

 

기업이력부터 이념, 예전 사장, 본사, 지사, 최근기사 입력날짜, 기사가 실린 신문사, 상장주식 평가가치의 변화 등등...

 

싹 다 외워버렸어요.심지어는 기업에 관한 분석자료 몇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나와있는지까지 외워버렸어요.

 

뭐 어차피 영문과 졸업하려면 17권짜리 라틴어 된 문학을 전부다 외우다시피 해야하는데 그런거 때문에 이젠 외우는건 일도 아니게

 

되어버렸네요. 영문과 왔는데 영어는 안배우고 라틴어먼저 배우더군요 ㅋㅋㅋ

 

그리고는 시내나가서 회색빛깔 정장에 파란셔츠 그리고 빨간넥타이까지 완벽코디를 하고 면접에 임했습니다.

 

근데 면접 당일날 날 보자마자 하는 말이 왜 기술직 면접에 정장을 입고 왔니? 이거였습니다.

 

처음부터 엄청 당황해서 얼버무리고 있는 찰나에 넥타이 풀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해서

 

근처에 있는 햄버거 레스토랑으로 가서 햄버거를 설어서 먹으면서 면접은 시작됐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왜 한국에서 학부를 나오고 또 학부를 졸업했느냐?

 

두번째 질문은 왜 계속 인문학만 전공하느냐?

 

세번째 질문은 왜 인문학 하다가 갑자기 정유관련 기술자격증을 따게 되었느냐?

 

그리고는 다른 것은 물어보지도 않고 하키에 관한 얘기로 시간을 보내고 간단히 와인 한잔씩 하고 헤어졌습니다.

 

전 그냥 있는데로 솔직히 얘기했습니다.

 

학벌을 만회하기 위해서 캐나다에 왔고 영어를 잘하면 사회활동을 하는데 잇점이 있을거 같아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캐나다에 살면서 캐나다의 삶에 만족을 느낄때 즈음에 뭔가 기술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걸 알았고

 

가장 돈이 많이 되는 직업을 찾아보니 그게 정유기술이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격증을 모조리 따버렸다고...

 

그리고 한 5년은 무조건 목숨바쳐서 일할 수 있다고 강하게 목에 힘을주고 눈을 뚫어져라 보면서 얘기했죠.

 

그랬더니 임원들도 돈이 삶에 필요한건 맞지만 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게 우선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이주동안 세벽 다섯시에 전화가 두번이 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현장은 오전 6시부터 돌아가니까 이 사람이 아침에 일어날 수 있나를 확인해보는거 같더라구요.

 

기분은 몹시 나빴지만 전화를 안주는 것보단 나았기에 참았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전화를 받았을때는 언제 몇시까지 시내사무실로 나와보라는 말에 혹시라도 까먹을까봐

 

자다가 전화를 받고 벌떡 일어나서 메모를 하고 다시 잠들고 오전 아홉시에 일어나서 메모를 보니

 

맙소사 ㅋㅋㅋ 알고보니 그날 오전 11시 30분 ㅋㅋㅋ

 

날짜에 관한 개념이 있는지를 확인 해보는거 같더라구요.

 

다행히도 시내까지는 30분이면 나가기에 간단히 샤워를 하고 따뜻한 밥을 먹고 편하게 청바지에 자켓을 입고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좋아하더군요.

 

이제야 로열더치쉘의 기술자 같다면서요

 

뭐... 나와보라는 순간에 연봉계약 하자는 줄 알고 대충 눈치는 챘지만

 

계약서에 씌여진 연봉을 보고 기절할 뻔했네요.

 

저는 그냥 5만불 정도 생각하고 나갔는데 너무 금액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숙식제공 및 3주근무 1주휴가, 휴가시 벤쿠버까지 왕복티켓 제공

 

1년 근무시 2년차부터 유급여름휴가 2주, 유급겨울휴가 2주 제공, 한국-캐나다 비행기왕복티켓 제공.

 

1년차 수습 7만불 + 인센티브없음

 

2년차 9만불 + 인센티브 (3만불)

 

3년차 12만불 + 인센티브 (6만불)

 

4년차부터 5년차까지 인센티브 포함 30만불이었습니다.

 

6년차부터는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씌여있는 바로는 오일커미셔너의 길이 있다고 하더군요.

 

환경은 영하 30도의 사막에서 하루 열두시간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거지만

 

뭐 이정도면 목숨 바쳐도 아깝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가서 5천 받아봤자 실제로 쥐는 돈은 4천인데 10년을 안쓰고 모아야지 월급 인상분 포함해서 6억을 모으지만

 

여기에서는 세금제외하고 5년이면 6억에 달하는 돈을 모을 수가 있고 나중에 벤쿠버로 다시와서 제가 하고 싶은 공부도

 

또 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지원도 해준다고 하니 그냥 바로 그자리에서 싸인을 해버렸습니다.

 

뭐 보아하니 결혼은 35세 이전까지는 틀려먹은거 같은데 순간의 돈만 보고 혹해서 평생 결혼도 못하고 사는건 아닐지

 

살짝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기술직도 대우를 받고 일을 할 수 있다는 환경에 그나마 위안을 해봅니다.

 

주변에 있는 유학생들은 다들 미쳤다고 해요.

 

그럴려고 대학나왔냐고요.

 

근데 난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대학을 나와서 기술직을 하던 말던 돈만 많이 벌면 된다구요.

 

어차피 최종목표는 돈 많이 벌어서 잘먹고 잘살자는거 아닙니까?

 

물론 정장입고 깔끔한 사무실에서도 돈을 많이 벌면서 자기만족을 할 수 있는 직업도 있겠지만

 

그건 그런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해요.

 

언젠간 저도 돈을 많이 모아서 시내로 나와서 다시 또 공부를 시작하면서 제 2의 인생을 살아갈 거라고 희망을 가져봅니다.

 

길어서 죄송합니다.

 

먼 길을 돌아오다보니 사연이 많아졌네요.

 

근데 취업에 조급해할 필요는 없는거 같아요.

 

나의 내공이 쌓이면 쌓일 수록 나에대한 가치는 기업에서 자연스럽게 알아준다고 생각해요.

 

취업을 준비하시는 여러분들 께서는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시고 천천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무엇을 부족하며

 

무엇을 내가 더 준비해야지 회사에서 데려가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나를 생각해보면 취업의 길은 누구한테나

 

활짝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