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성 상실의 시대
2009년 하고도 3월 밀레니엄 버그로 지구가 멸망위기에 처할 거라는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범지구적 종말론은 이제 그 확고하던 방향성을 상실한 채, 술자리에서 조차 언급되지 않는 저급 개그로 치부되고 있다. 세기의 예언자였던 노스트라다무스로부터 전해온, 아니 그 이전부터 역사가 기록 되고나서부터 있어온 종말론이 지금에 와서는 왜 힘을 잃고 방향성마저 상실하게 되었는가.
매미가 2주간 나와 살며 피를 토하며 울기위해 땅속에서 7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학생들도 짧고도 강렬한 대학생활을 만끽하기 위해서 12년에 이르는 긴 인고의 시간을 감내한다. 그리고는 매미의 짧고도 강렬한 2주에도 못비기는, 철없고 맥없는 몇 년간의 지루한 대학생활을 보낸다. 자신이 잘못 선택한 전공에 대한 후회와, 사회에 관한 통렬한 하지만 의미 없는 비판을 하는 시간을 보내며 차츰차츰 만성 백수로의 길을 걷게 된다.
세기의 예언자가 의미 없는 헛소리를 한 것일까? 학생들이 매미보다 못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애초에 방향성 자체를 상실했던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후대인을 위한 신실한 경고라기보다도 자신의 명성을 위한 단순한 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비 백수들은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니고, 애석하지만 스스로가 스스로의 전공에 대한 확신과 체계적인 이해가 없었던 것이다.
남들이 다 하는 토익 토플 학점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저변에 깔려있어야 할 체계적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채로, 단순한 단어외우기 솔루션 외우기 등으로 수치적 점수만 잘 받아놓은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물론 수치적 점수도 객관적인 성실도 평가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이미 이 세상에서는 학생들에게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평가하려고 한다. 아니, 그 이상의 것들이 아닌, 저변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이해와 그에 제반되는 행동들을 원하는 것이다.
한때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온갖 화려한 이펙트들을 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질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별반 다를 건 없지만.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더라도 좌우 여백이 잘 안 맞고 문장이 끊긴 채로 다음 줄에 아무렇게나 붙여져 있는 등의 보는 사람이 답답한 발표 자료로는 아무리 준비한 사람의 성의가 있다 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주객이 전도 된 것이다. 발표의 주안점은 상대방에게 내가 지닌 지식이나 정보를 손쉽게 전달하는 것인데, 재미있는 겉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알맹이를 신경 못쓴 것이다.
바로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다. 과감히 지금의 시대가,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방향성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너 자신을 알라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리 문제해결을 위한 생각을 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수술대에 올라가는 환자가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로 수술을 진행할 수 있겠는가. 모든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은, 바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웠던 점이, 평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이 책에서 지향하는 최종 목표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나도 4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7~80년대에 단순한 지표들로 덮어진 수많은 공장들을 처음부터 뜯어고치는 수술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 아쉬움에 휩싸였다. 물론 그 속에 들어가는 수많은 재무와 관련된 지표나 단어 등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적어도 그 방법론적인 부분에서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소리다.
실지로 지금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제 대학입학)의 성향적인 측면에 있어서 나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가족력이라는 것이 있어 동생 자체의 성향이 원래 나와 비슷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부분에 관한 것들은 접어두기로 하자. 동생의 중학교 입학 이후 약 6년여에 걸쳐서 정기적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했는데, 이야기의 대부분은 나의 질문으로 이루어 졌다. 1+1=2 식의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측면에서의 총체적 질문들, 즉 정답이 없는 질문들을 많이 했었다. 정답이 없다고 모범답안까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그러한 수년간의 경험들이 쌓여서 지금의 동생을 이루었다고 하면 개인적으로 참 기쁘고 누군가한테 자랑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교육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는 것이니까. 더불어 적어도 내 마인드가 진취적 일수 있다는 스스로의 도취감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이 늘 통하는 것은 아니다. 군대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후임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대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 소크라테스가 말년에 독배를 마시는 것과 진배한 상황도 여러 번 연출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소크라테스 같은 큰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을 적용시키는 사람들과 나 스스로에게 있었다. 나는 후임들과 주변사람들에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목적의식 고양을 원했고, 후임들과 주변사람들은 단지 일처리를 빨리 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건 이래서 이렇게 된다 한마디 말이면 될 것을 몇 시간에 걸쳐서 설교를 하는 사람을 아무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상식 중에 상식이다. 나도 내 스스로의 문제점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책에서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밀실회의를 해서 구체화된 이론을 현장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이용했는데, 역시 밀실회의의 한계가 종반부에 가서 여실히 들어나게 된다. 더불어 노동자들을 단순한 도구정도로 취급하는 내용이 책 전반에 걸쳐서 등장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선 사실 거부감 또한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아이템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포인트는 바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 그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 이라는 것이다.
스스로가 요나교수가 되는 길
"The Goal" 은 분명 훌륭한 책이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래도록 칭송된 책이며, 수많은 학교에서 필독서로 지정될 정도로 성공한 책임에 틀림없다. 책에선 우리 스스로가 요나 교수가 되는 법에 대해서 잘 서술해주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가자면 이 책은 엘리 골드렛의 자서전 적인 내용이며, 그는 자신의 모습을 요나교수로 형상화 시킨 채 스토리를 진행 시킨다. 그중 특히 마지막 부분의, “저의 요나가 되어 줄 순 없겠습니까?” 라고 묻는 루이스의 찬양어린 요청에서는 사실 구역질이 났다. 무릎을 치면서 읽어갔던 내용들이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개운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The Goal" 의 후속작인 "It's not luck" 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물론 몇 년 전이겠지만, 국내에 들어온 것은 최근의 일일 것이다. 반드시 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학의 대부로 치부되는 엘빈토플러의 제 삼의 물결이 바로 그것이다. 부의 미래라는 책이 새로 나왔을 때 몇 페이지 안 들춰보고도 상당히 실망하고 톱스타 이펙트에 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교수님의 예전수업인 지능형 설계에서 제일 와 닿은 것이 있었다. 바로, Knowledge, Information, 그리고 Data 에 관한 것이었다. 부수적이고 세부적인 항목들의 관심보다도 오히려 그 부분에 관한 명쾌한 설명이 지금 나를 지능형 시스템 연구실에 앉아 있게 해준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보의 바다, 흔히 우리가 인터넷을 칭할 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보의 바다라는 말보다는 자료의 우주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싶다. 우주공간에 수없이 떠다니는 부유물처럼, 자료 또한 필요한 자료와 그렇지 못한 자료들이 뒤섞인 채 인터넷 공간을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 국한 지을 것이 아니다. 조금 더 나가서 대학에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식 그 자체를 만들어 나간다는 기본 이념은 배제한 체, 겉으로만 들어나는 자료 등의 지표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다. 한 번 더 나가서 대학뿐만 아니다. 누구보다도 공정해야 할 공중파 방송에서 시청률을 끌어 모으기 위한 단순 편파적 충격보도 등이 성행하는 것이다. 온전한 지식이나 중립적인 성향을 지닌 보도가 아닌 한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친 Information 만을 제공한 탓에, 재작년 대한민국은 정말 전 세계 외신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선사했다.
책이 처음 출간될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난 지 25년이 지났다. 이제는 모든 기업에서 이러한 방법론 적인 것들을 도입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있다. 더불어 지금에 와서 수많은 독자들 또한 단순한 학업적인 혹은 그에 달하는 이유로 이 책을 겉핥기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것이 새로운 관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단순한 Text 가 진리가 되고 관행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개념적인 참고서가 바이블이 되어버린다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남의 Data나 Information이 아닌 스스로의 Knowledge를 축척하는 것, 그것이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바이고, 그것을 위해 이 책을 추천하셨을 꺼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 The Go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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