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ditFour Korean comfort women after they were liberated by US-China Allied Forces outside Songshan, Yunnan Province, China on September 7, 1944.사진이 찍힌 자리
레딧 역사 사진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임. 1944년 9월 7일, 중국 윈난성 송산 바깥에서 미·중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조선인 위안부 네 명을 찍은 것이라고 붙어 있었음. 게시물에 달린 건 그 한 줄뿐이었고, 얘기는 전부 댓글에서 굴러갔다.
원본 설명은 '일본 여성'
가장 구체적인 정정이 댓글에서 나왔음. 사진이 찍힌 당시의 원본 설명은 이들을 일본 여성으로 적어 뒀다는 거임. 송산 전투에서 일본군이 물러날 때 남겨진 사람들로 추정한다고 돼 있었다고 함. 사진을 찍은 미 육군 통신대 병사도, 옆에 서 있는 중국군 병사도 자기들이 마주친 게 뭔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였음. 송산에서 해방된 열 명 중 여덟 명이 조선인이었다는 내용도 같은 댓글에 있었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상태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는 뜻임.
'위안부'라는 말을 쓸 거냐
댓글이 가장 크게 갈린 데가 여기였음. 왜 아직도 위안부라고 부르냐는 물음이 여러 번 나왔다. 반복해서 강간당한 성노예였고, 위안부라는 말이 고통을 덜해 보이게 만든다는 지적이었음. 반대쪽은 그 말이 미화가 아니라 가해자를 특정하는 표기라고 봤음. 일본군이 붙잡은 여성들을 부를 때 실제로 쓴 말이고, 동아시아에서 그 단어 자체가 이미 혐오와 긴장을 담고 있다는 거임. 그 말을 볼 때마다 '노예화·고문·강간 피해자'로 바꿔 읽어야 한다고 적은 사람도 있었음. 여기에 다시 반박이 붙었음. 배경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고용된 성매매처럼 들리고, 그게 더 나쁘다는 얘기였다.
웃고 있는 병사
사진 속 병사가 웃고 있는 게 불편하다는 댓글이 두 번째로 많이 추천받았음. 그 아래로 곧장 반론이 붙었다. 그는 이들을 해방시킨 쪽이고, 사진 찍히는 중이라는 거임. 몇 년씩 전쟁을 치른 사람에게 계속 울고 찡그리고 있으라고 할 수는 없다고 봤음. 사진 한 장으로 구조한 사람을 깎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래도 옆 사람들의 상태를 보면 그렇게 웃긴 어렵다고 본 댓글도 있었음. 상황을 제대로 모른 채 걸어 들어온 것 같다고 적은 사람도 있었고. 나중에 그 사람은 자기가 찾은 자료를 따로 댓글로 정리해 붙였음.
왜 덜 알려졌나 하는 얘기
가장 많이 추천받은 댓글은 이 대목이었음. 일본이 어떻게 자기들 전쟁범죄를 세상이 잊게 만들었는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거임. 독일과 비교한 댓글이 여럿 붙었다. 히로시마 박물관에 다녀온 지인이 그 이전 맥락 설명이 거의 없어 당황했다고 전한 사람이 있었음. 오사카 공습 박물관에 갔더니 전쟁 전 얘기가 조금 나오긴 하는데 관세 문제로 틀이 잡혀 있더라고 적은 사람도 있었고. 잊은 건 세계가 아니라 서방이라는 반응도 있었음. 냉전 상대를 상대할 태평양 쪽 우방이 필요했으니 그 얘기를 덮은 거라는 주장이었다. 731부대 자료를 넘기는 대가로 전범들이 풀려났다는 댓글도 있었는데, 이건 댓글에 적힌 주장임.
재판에서 빠진 것
전후 재판 얘기를 꺼낸 댓글이 하나 있었음. 강간은 뉘른베르크에서 전쟁범죄로 기소되지 않았고 동경 쪽 재판에서도 대체로 지나갔다는 거임. 당시에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던 일인데 왜 관심이 없었는지는 모르겠다고 적었음. 연합군 자신도 걸렸을 것이라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한다고 덧붙였는데, 본인도 추측이라고 밝혔음. 여기에는 개별 병사의 범죄와 조직적으로 운영된 제도는 같은 얘기가 아니라는 반박이 붙었다. 한쪽의 악행이 다른 쪽을 정당화하진 않는다고 한 줄 적은 사람도 있었고. 해방된 뒤에도 고향에서 편견을 겪은 사람이 많았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마땅한 이해를 받았다고 쓴 댓글이 있었음.
번역 및 요약 과정에서 일부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












해외반응 35
수집된 해외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