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최고라는 후기

레딧 아일랜드 게시판에 한국에서 온 40대 여성이 첫 아일랜드 여행 후기를 올림. 두 나라가 식민 지배와 분단이라는 아픔을 공유해서 전부터 관심이 있었다고 썼음. 더블린과 골웨이를 돌고 돌아가는 길에 몇 가지 적어 본다는 식이었다. 1번이 딸기였음. 테스코와 던스, 주말 마켓에서 거의 매일 사 먹었다더라. 한국 딸기도 좋지만 단맛이 좀 인위적인데, 여기 건 단단하고 즙이 많아서 진짜 딸기 맛이 났다고 함. 포티풋에 수영하러 갔다가 웩스퍼드 딸기 파는 사람을 봤는데 카드가 안 돼서 못 샀고 아직도 아깝다고 썼음. 댓글도 딸기 얘기로 붙었다. 제철 딸기는 진짜 좋다는 말이 여럿이었고. 웩스퍼드 딸기가 최고라는 건 온 세계에 떠들 만큼 흔한 상식이라는 댓글도 있었음. 길가에서 파는 게 가게 것보다 훨씬 낫다는 말도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다들 아는 사실이라고 하더라. 딸기가 그 정도면 라즈베리는 말도 안 되고 블랙커런트도 그렇다는 댓글도 있었음. 워터퍼드의 한 농가를 콕 집어 추천했고. 결국 웩스퍼드 딸기는 먹었냐, 아직도 아까워하는 중이냐고 물은 사람도 있었다.

감자칩과 소금 식초

감자 얘기도 길게 썼음. 테스코에서 산 감자를 그냥 전자레인지에 돌렸을 뿐인데 기가 막혔다고 함. 감자칩은 아무 맛도 안 넣은 게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더라. 여기 사람들은 왜 소금 식초 맛에 집착하냐고도 물었고. 여기에 소금 맛이 우리가 가진 것 중 제일 밋밋한 옵션이라는 답이 달렸음. 제일 사랑받는 건 테이토 치즈앤어니언이라고. 자기는 플레인이 오히려 싫고 소금 식초가 최애라는 댓글도 있었다. 아니면 도넬리스의 발리말로 렐리시 맛이라고 했고. 우유도 최고급인데 그건 놓쳤다는 지적도 붙었음. 김치가 진짜 최고 등급 음식이라는 농담도 하나 있었다.

커피랑 음식은 합격

커피는 3번 항목이었음. 한국은 체인 카페가 거의 다 잡고 있어서 괜찮은 개인 카페를 찾기 어렵다고 썼다. 더블린이랑 골웨이는 둘 다 커피가 좋았고 가는 데마다 플랫 화이트 거품이 정확했다고 함. 음식은 옆 나라가 맛없기로 유명해서 기대를 안 했는데 살이 쪘다더라. 피자, 감자튀김, 브런치, 페이스트리를 꼽았음. 구글 지도에 찍어 두고 못 간 데가 아직 많아서 벌써 또 오고 싶다고 썼고. 댓글에서는 방문객이 음식 별로라고 할 때마다 놀란다는 말이 나왔음. 정작 우리는 음식 정체성이랄 게 없는데도 그렇다면서. 토론토에서 왔고 4년 넘게 살았다는 사람은 거의 모든 항목에 동의한다고 했다. 다양하기로 유명한 데서 왔는데도 여기 음식이 좋고, 재료 질이 좋으면 그것만으로 멀리 간다는 얘기임. 몇 년 전 이탈리아에 갔는데 음식이 영 별로여서 집이 그리웠다는 댓글도 있었고.

차가운 바다와 개똥

폭염이 온 날 포티풋에 수영하러 갔다고 썼음. 기차로 더블린 시내에서 그렇게 가까운 데 그런 바다가 있는 게 신기했다더라. 10분 수영하고 나와서 덜덜 떨었고, 처음엔 죽는 줄 알았는데 적응하니 엔도르핀이 돌았다고 함. 현지인들이 그 물에 평온하게 떠 있는 걸 보고 체질이 다르구나 싶었다고 썼음. 댓글에서도 바다가 진짜 차갑다는 맞장구가 나왔다. 적응이 안 된 상태면 아일랜드해에서 10분은 너무 길다는 말도 있었고. 8월에서 9월이 수온이 제일 높은데 그래 봐야 15~16도라는 설명도 붙었음. 다음엔 대서양 쪽에서 수영해 보라는 댓글도 있었다. 차가움이 아예 다른 차원이라고. 8번 항목은 사방에 널린 개똥이었음. 밟지 않으려고 계속 바닥만 보다가 풍경을 제대로 못 볼 때가 많았다는 거임. 이 대목에서 웃었다며 이제 우리 편이라는 댓글이 달렸고. 개똥은 거의 어디에나 있고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는 동의도 있었음. 우리가 개똥 왕이라는 자조도 나왔다. 미국 사람 입장에선 놀랍다는 댓글도 있었음. 거기선 안 치우면 사람들이 망신을 준다면서.

10대가 무섭다는 대목

6번 항목이 아일랜드 10대가 무섭다는 얘기였음. 말레이 파크에서 열린 루이스 카팔디와 플로렌스 앤 더 머신 공연에 갔는데, 펜스 쪽 10대 여학생들이 너무 세게 밀어서 진짜 무서웠다고 썼다. 자기는 40대 여성인데 그랬다면서. 한국에서도 10대가 제일 무서운 집단이라 눈을 내리깔고 다닌다고 덧붙였고. 세계 공통이라 다행이라는 식이었음. 댓글에서는 10대들 대신 사과한다는 말이 나왔다. 경찰력이 사실상 없고 형사 사법이 솜방망이라 그렇다는 주장이었음. 여기엔 이건 경찰 문제가 아니라 양육 문제라는 반박이 붙었고. 그것도 맞지만 경찰 문제이기도 하다는 재반박이 이어졌음. 개인 책임 탓만 하면 문제가 안 풀린다는 댓글도 있었다. 나쁜 양육이 반복되는 패턴이면 그 고리를 끊는 게 정부 일이라는 얘기임. 죄에 맞는 처벌이 답이고 갱생시키겠다고 너무 오래 끌었다는 강경한 말도 나왔고. 반대로 10대가 위압적이긴 해도 길을 잃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제일 먼저 나서는 게 걔들이라는 댓글도 있었음.

말투가 아일랜드 사람 같다

후기 자체를 두고 웃는 댓글도 많았음. 원글이 '개똥'을 현지 속어로 쓰고 '세상에' 하는 감탄사까지 쓴 걸 보고 진짜 아일랜드 사람 아니냐고 물은 사람이 있었다. 이웃이라는 단어랑 그 속어 써 줘서 고맙다는 댓글도 붙었고. 아일랜드 사람이 쓴 줄 알겠다며 말투를 다 익혔다는 말도 나왔음. 읽으면서 이 사람이 한국인이 맞나 의심했다는 댓글도 있었다. AI로 요약한 글이겠거니 한다는 짧은 댓글도 하나 있었고. 반대쪽에는 영어가 훌륭하다며 아일랜드 사람이 한국 갈 때 꼭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물은 사람도 있었음. 추천이 제일 많이 붙은 건 걱정 말라는 답이었다. 원글이 마지막에 아무도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는데, 좋은 글이었고 즐겁게 지내서 다행이라고 했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같이 들어 있어서 훨씬 진짜 같다는 댓글도 있었다. 다 좋았다거나 다 별로였다는 후기보다 낫다는 거임. 별 넷짜리 후기라는 말도 있었고. 부정적으로 적힌 것들은 우리도 늘 불평하는 것들이라는 댓글도 붙었음.

펍이 시끄럽다는 말

10번은 펍이 시끄럽다는 항목이었음. 축구랑 F1을 보려고 혼자 펍에 갔는데 영혼이 나갈 정도로 시끄러웠다고 썼다. 거기서 친구를 사귈까 했지만 실패였다고 함. 원래 내향적이고, 혼자 앉은 아시아 여성한테 먼저 말 거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는 얘기임. 댓글에서는 제일 좋은 펍은 오히려 조용한 데라는 조언이 나왔다. 다음에 올 땐 추천을 받아 보라는 거임. 모든 펍이 시끄러운 건 아니니 조용한 동네 펍을 찾으면 말 섞을 수 있다는 댓글도 붙었고. 자기라면 같이 펍에 갔을 거라는 사람도 있었음. 다시 오면 연락하라며 더블린 안팎을 더 보여주고 싶다는 댓글도 있었다. 소름 끼치게 들리지 않길 바란다며 자기가 36세 여성이라고 밝혔고. 다음엔 북아일랜드로 오라는 초대도 있었음. 나니아에 영감을 준 로스트레버라는 곳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축에 든다며, 34세 여성인데 같이 바다에 들어가고 차로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게일어와 런던 얘기

마지막 항목은 또 오고 싶다는 말이었음. 골웨이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고, 모허 절벽 투어 중에 스친 작은 마을들도 예뻤다고 썼다. 섬 투어도 했는데 아직 아일랜드어를 쓰고 있다는 게 존경스럽다고 했음. 한국은 35년 식민 지배를 겪었고 언어를 지키는 데 엄청난 피와 노력이 들었다는 설명을 붙였다. 수백 년을 견디고 언어를 살려 둔 건 대단하다는 거임. 예전엔 런던이 제일 자주 가고 좋아하는 도시였는데 이제는 아니라고도 썼음. 지배당한 역사를 가진 나라 사람으로서, 정복한 이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도시보다 더블린이 훨씬 아름답다는 걸 알았다는 얘기임. 댓글에서는 한국 얘기가 이어졌다. 최근 한국에 다녀온 아일랜드 사람이 곧 또 갈 계획이라고 했고. 캐나다에 사는 아일랜드 사람은 승무원인 아내가 한국인을 아시아의 아일랜드인이라고 부른다더라고 전했음.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에 빠져서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가고 싶다는 댓글도 있었다. 서울에서 떡볶이를 실컷 먹을 계획이었는데 아파서 못 먹었고 커피숍 덕에 한 주를 버텼다는 사람도 있었음. 동대문 쪽에서 원단을 잔뜩 사 와 아직도 쓰는 중이라고 했고. 제주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는 사람은 어느 지역 출신이냐고 물었음. 거제 근처에 있었다는 댓글도 붙었다. 며느리가 한국 사람이라 서울에서 온 사돈을 메이오 쪽 명소로 안내했다는 긴 후일담도 올라왔음. 우리도 한국만큼 아일랜드어를 지켰으면 좋았을 거라는 댓글도 있었다. 35년도 그렇게 힘들었다는데 우리는 800년이었다면서.
출처: red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