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전국 물었더니 나온 각국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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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국이 붙은 전쟁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이는 레딧 게시판에 한국전쟁 질문이 올라왔음. 중국 쪽 작성자였는데, 요새 국제 정세가 흔들리는 걸 보다가 75년 전 전쟁이 떠올랐다고 했거든. 예전엔 중국이 유엔군과 붙었다는 것만 알았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참전국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는 거임. 중국 쪽으로는 중국과 북한, 그리고 장비와 공중전을 지원한 소련을 적었음. 유엔군 쪽은 미국,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프랑스, 필리핀, 뉴질랜드,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태국, 에티오피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덴마크,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을 나열했음. 이렇게 많은 나라가 얽혔으니 각국 사람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보는지 알고 싶다고 했음. 참전하지 않은 나라 얘기도 듣고 싶다고 덧붙였고. 무기 얘기부터 붙었음. 영국 공군이 스핏파이어를 띄운 마지막 전쟁일 거라고 쓴 사람이 있었거든. 2차 대전 장비와 전술에 제트 전투기 같은 신형이 섞인 이상한 전쟁이었다는 말이 이어졌음. 무스탕이 기습당하고 세이버와 뒤엉켰다는 식으로 기종 이름만 늘어놓은 댓글도 있었음. 미그기의 나토 별칭이 낯설었는지 대체 그게 뭐냐고 되물은 사람도 있었다.

중국이 안 들어왔다면

한국 쪽에서 붙은 댓글이 제일 위로 갔음. 중국이 개입해서 유엔군을 38선 아래로 밀어내지만 않았으면 통일이 됐고 모든 한국인이 자유로웠을 거라는 얘기임. 그 일로 아직도 속이 쓰리다고 했음. 도와줘서 다행이지만 나라를 하나로 못 만든 게 미안하다고 쓴 사람도 있었음. 독일도 합쳐졌는데 한국은 아니라는 거임. 여기엔 독일은 지금 마트 체인 두 곳 사이에서나 갈린다고 받아친 농담이 붙었더라. 반대편 시각도 나왔음. 유엔이 안 들어왔으면 북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거임. 북한이 통일 직전까지 갔는데 미국을 앞세운 개입으로 막혔으니 저쪽도 속이 쓰릴 거라고 본 사람도 있었음. 당시 미국과 동맹국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타이완을 정통으로 봤다는 설명도 붙었음. 그러니 중국이 안 나섰으면 다음 차례가 자기들이었을 거라는 얘기였음. 중국 쪽에서 답한 댓글도 있었음. 주변 사람들은 북한 편에 선 게 도덕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맞았다고 여긴다는 거임. 참전 군인들이 살아 있을 때는 크게 존경받았다고 했음. 당시 남쪽도 북쪽 못지않게 가혹했다고 알고 있고, 이념이 같은 쪽에는 더 너그럽게 본다고 솔직하게 적었더라. 미국이 북한을 넘어뜨린 다음 중국까지 밀고 들어올까 봐 걱정이 컸다는 설명도 있었음. 마오쩌둥의 말을 옮긴 사람도 있었음. 오늘 제대로 한 대 때리면 내일 백 대를 막는다는 문장임. 반면 중국과 미국이 직접 붙은 유일한 전쟁이었다며, 자기는 우리 군인들이 거기 있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고 쓴 사람도 있었다.

잊힌 전쟁과 매시

미국 쪽에서는 잊힌 전쟁이라는 말이 계속 나왔음. 끝나지도 않았고 잊혔고 위태로운 상태로 남았다고 적은 댓글이 있었거든. 잊혔다는 게 참 부끄럽다고 쓴 사람도 있었음. 2차 대전의 성공과 베트남의 실패가 워낙 커서 그 사이 전쟁이 가려졌다는 분석도 있었음.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겪은 악명과 홀대가 한국전쟁 쪽을 덮어 버렸다는 거고. 60년대에 태어났는데 드라마 매시 말고는 이 전쟁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고 쓴 사람도 있었음. 드라마가 잊혔다는 데는 동의 못 하겠다고 받은 댓글도 있었음. 다만 전쟁 자체는 원래 얘기 안 꺼내는 주제였고, 서른 살 아래한테 물으면 한국이 왜 둘인지도 어렴풋할 거라고 했음. 그 드라마가 실제 이 전쟁 얘기였냐고 놀란 반응도 있었고. 노르웨이가 보낸 게 야전병원 노르매시였다고 알려 준 사람도 있었음. 소문으로는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만큼 재밌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더라. 미국이라면 이 전쟁을 더 기억할 줄 알았다고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음.

맥아더를 향한 성토

댓글이 제일 뜨거웠던 대목은 맥아더였음. 진격을 그 사람한테 맡기기 전까지는 잘 굴러갔다고 쓴 댓글이 있었거든. 중국에 핵을 쓰려던 계획이 있지 않았냐고 물은 사람이 있었고, 그 정도로 뭉뚱그릴 일이 아니라며 발언을 그대로 옮긴 댓글이 붙었음. 열흘 안에 한국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말이었음. 만주 목 부분에 늘어선 공군 기지와 보급창에 원자폭탄 30발에서 50발을 떨어뜨렸을 거라고 했음. 상륙 부대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동안 동해에서 서해까지 방사성 코발트 띠를 뿌렸을 거라는 대목도 있었음. 수레와 트럭, 비행기로 뿌리면 최소 60년은 북쪽에서 육상 침공이 불가능했을 거라는 얘기였음. 이걸 보고 욕부터 튀어나온 반응이 이어졌음. 그러면 체르노빌 0편이 됐을 거고 어쩌면 진짜 체르노빌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비튼 사람도 있었고. 맥아더가 과대망상이었고 미군 초기 실패의 원인이었다며 진짜 대단한 사람은 리지웨이였다고 쓴 댓글도 있었음. 2차 대전 때부터 문제가 있었으니 그때 잘랐어야 했다는 말도 나왔음. 정치권 인맥이 있었고 자기 홍보에 능했다는 게 이유였음. 호주 쪽에서도 한마디 붙었음. 맥아더가 브리즈번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동맹군을 깔보는 태도 때문에 호주의 2차 대전 기여가 지금 잘 안 알려져 있다는 거임. 뉴기니와 보르네오, 자바에서 벌어진 전투는 전쟁 통틀어 최악의 환경이었는데 회고록에서 축소됐다고 했음. 필리핀 총독 시절 모자와 파이프가 과했다며 겉만 요란했다고 본 사람도 있었고. 우리 최악의 장군 중 하나라는 말도 나왔음. 그래도 인천은 훌륭한 반전이었다고 공을 인정한 댓글이 붙었다.

누가 싸웠고 누가 갈랐나

유엔군이라는 표현이 후하다고 짚은 댓글도 있었음. 태평양 전쟁처럼 이것도 사실상 미국과 한국군이 치른 전쟁이라는 거임. 미국이 한국 전선에 500만 명을 돌렸는데 베트남보다 많은 수라고 했음. 다른 서방 국가들은 다 합쳐도 5만 명이 안 됐다고 적었더라. 북한이 미군이 아직 주둔해 있는데도 밀고 내려왔으니 일부러 싸움을 건 거라는 게 그 사람 해석이었음. 이 댓글을 두고 이 사람이 미국 사람들을 대표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은 반응도 있었음. 분단 책임을 따진 댓글도 있었음. 스탈린이 전쟁 뒤 자기 군대가 서 있는 곳은 소련 땅이 된다고 했고, 실제로 한반도로 병력을 내려보내던 참이었다는 거임. 급해진 미국이 해군에 선 긋는 일을 맡겼고 그렇게 38선이 정해졌다는 얘기였음. 그러니 스탈린을 탓하라는 게 결론이었음. 애초에 한국이 갈라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짧게 적은 사람도 있었고. 참전을 돌아본 미국 쪽 댓글도 있었음. 이 전쟁에 들어가고 베트남에서 빠졌으면 좋았을 거라고 했음. 당시 한국 지도부도 결함이 많았고 처음엔 북쪽보다 나을 게 없었다고 봤지만, 길게 보니 성공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됐다는 거임.

폴란드 이란 이탈리아

참전국 목록에 안 들어간 나라들이 자기 사정을 적었음. 폴란드는 그때 소련 위성 정부 아래였다고 했거든. 북한에 물자와 의료 인력을 좀 보냈는데 나라를 다시 짓는 중이라 규모가 아주 작았다는 거임. 지금 폴란드에서는 남한이 먼저 공격받았고 내내 방어했다는 게 일반적인 이해라고 적었음. 폴란드가 체코슬로바키아, 스웨덴, 스위스와 함께 중립국 감독위원회에 있었다는 설명도 붙었음. 다만 폴란드 쪽은 1995년에 북한이 내보냈다고 했음. 이란 얘기도 있었음. 유엔 총회에서 남한 쪽에 표를 던진 게 전부라는 거임. 국영 매체는 동방 정책 때문에 동구권을 칭찬하지만 그 밖에는 이란에서 한국전쟁이 거의 안 알려져 있다고 했음. 이탈리아 사람은 자기 나라가 그때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다며 병원 하나를 보낸 게 다였던 걸로 기억한다고 적었음. 이스라엘 쪽 댓글도 있었음. 벤구리온이 군대를 보내려 했는데 노동 시온주의자들이 막았다는 거임. 소련을 해방자로 보는 사람이 그때까지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음. 프랑스 식민 지배를 돕느라 1945년과 1946년에 베트남에 있었다며 자랑할 일은 아니라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기억

집안 얘기를 꺼낸 댓글도 있었음. 한국 사람이라며 외할머니한테 들은 걸 적었거든. 외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전주에 땅이 있다는 이유로 북한군에 붙잡혀 갔고 그대로 죽었다고 들었다는 얘기임. 비행기가 집 위로 날아다닐 때 언니가 자기를 숨겨 놓고 달랬다는 기억도 있었음. 미군이 초콜릿과 분유를 나눠 줬다는 대목도 있었고. 이제 너무 연로해서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음. 미국 쪽에서도 손자가 할아버지 얘기를 남겼음. 제25보병사단 소속이었고 전쟁 얘기는 거의 안 했다고 함. 죽을 때까지 그때 일로 악몽을 꿨다는 거임. 중국 국경 근처에서 인해 전술을 막아 냈다는 말을 흘린 적이 있다고 했음. 그 싸움에서 총알이 배낭에 박혀 몸에 닿지 않았고, 구멍 난 티셔츠를 기념으로 갖고 있었다고 적었음. 북쪽에서 후퇴할 때 어둠 속에서 부대와 떨어졌는데 한 북한 여성이 하룻밤 재워 줬다는 얘기도 남겼음. 서울에서 감사드린다고 인사한 댓글이 붙자, 10년쯤 전에 돌아가셨다는 답이 달렸음.

아직 안 끝난 전쟁

따지고 보면 이 전쟁은 안 끝난 것 아니냐고 물은 댓글도 있었음. 어디선가 읽었는데 평화 조약은 없고 정전 협정뿐이라던데 틀렸으면 알려 달라고 했거든. 맞다고, 법적으로는 여전히 전쟁 상태라고 답한 사람이 있었음. 한국에서 군 복무를 했다는 사람은 자기 세대 얘기를 적었음. 햇볕정책과 통일 논의는 북쪽에는 돈벌이였고 남쪽에는 정치 쇼였다고 본다는 거임. 그사이 핵 개발이 진행됐다고 했음. 자기도 몇 해 전 대화 국면은 좋아했지만 이제는 결실이 없을 걸 안다고 썼음. 자기도, 아들도, 그 아들도 군대에 갈 거고 그건 상관없다고 했음. 한국에서 중국을 향한 감정이 왜 나빠졌냐는 질문에 길게 답한 댓글도 있었음. 한류 제한 이후 크고 작은 일이 수십 건 있었다는 거임. 가장 최근 건은 중국 정부가 잠정조치수역 안에 어업 시설을 세운 일이라고 했음. 중국은 어업용일 뿐이라고 하지만 구조물 규모가 커서 영해 문제로 느껴진다는 설명이었음. 그럼 중국도 하나로 합쳐지면 되지 않냐고 받은 댓글도 있었고. 75년이 지난 지금 각자 국익을 따져 보면 중국도 미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통일을 밀어붙일 이유가 없다고 정리한 사람이 있었다. 지정학적 균형이 크게 흔들리니 다들 지켜보기만 하는 거고, 냉정하지만 그게 현실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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