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서 붙인 이름
레딧의 나를 웃게 만든 것이라는 게시판에 영상이 하나 올라왔음. 본문 없이 제목 한 줄이 전부였음. 한국전쟁 때 쉴레이만 딜비를리이라는 튀르키예 군인이 추운 밤에 혼자 떨고 있던 고아 소녀를 발견했다는 내용임. 달빛 아래에서 만났다고 아일라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고. 전쟁이 끝나고 연락이 끊겼는데 65년이 지나 다시 만났음. 게시판 이름은 웃게 만든 것인데 댓글은 죄다 우는 얘기였다. 이 게시판 이름을 바꾸자는 농담이 여러 개 달렸음.
튀르키예 이용자가 붙인 뒷이야기
튀르키예 사람이라고 밝힌 댓글이 맥락을 길게 달았음. 쉴레이만은 자기 얘기를 거의 안 하던 겸손한 사람이었다고. 한 기자가 소녀와의 일을 찾아내면서 알려졌다는 거임. 그가 속한 튀르키예 여단은 연합군 편에서 싸웠고, 중국이 참전한 뒤 후퇴를 엄호하다 가장 큰 피해를 냈다고 함. 총알이 떨어지자 그대로 돌격했다는 대목까지 붙었음. 여기까지는 그 댓글 작성자가 전한 내용임. 설명을 붙여 줘서 고맙다는 답글이 줄줄이 달렸음.
인해전술이라는 표현
그 표현을 두고 밑에서 말이 갈렸음. 인해전술은 훈련도 안 된 병력을 목숨 아끼지 않고 밀어 넣었다는 인상을 주려는 선전 용어라는 반박이 달렸음.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공격이 순서대로 이어져서 파도라는 말이 붙은 거라는 설명임. 반대로 숫자를 들이민 댓글도 있었음. 중국 인민지원군이 한반도에 약 300만 명을 투입했는데 그때 한국군 상비 병력은 10만 3천 명 정도였다는 거임. 인구가 2천만 명쯤이던 나라 얘기라고 덧붙였음. 그 정도면 표현이 과하지 않다고 봤더라.
영화와 다큐를 찾아온 사람들
이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는 댓글이 위로 올라갔음. 제목은 아일라고, 좀 어설픈 데가 있어도 뭉클하다는 평이었음. 그런데 한국 영화라고 쓴 걸 밑에서 바로 고쳐 줬음. 실제로는 튀르키예에서 만든 작품이라며 영화 정보 링크를 붙였더라. 유튜브에 다큐멘터리 전편이 있다고 링크를 단 댓글도 여럿이었음. 한국전쟁을 주 단위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추천한 사람도 있었고. 전장의 병사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포로와 민간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나온다고 했음.
두 사람의 그 뒤
같은 댓글에 두 사람의 마지막도 적혀 있었음. 쉴레이만은 2017년에 여러 장기 기능이 멈춰 세상을 떠났다고 함. 아일라도 코로나 합병증으로 떠났다는 내용이었음. 이걸 보고 아일라까지 갔냐며 더 운다는 답글이 붙었음. 이제 다시 같이 있는 거라고 받은 댓글도 있었고. 아일라가 가족을 남길 수 있었던 게 저 튀르키예 사람 덕이라는 말도 나왔음. 아흔인데 저 정도면 정말 좋아 보인다며 두 사람 얼굴부터 본 댓글이 제일 위였다.
참전용사 지원이 늘었다는 주장
이 이야기가 한국에 알려진 뒤 참전용사 지원이 늘었다는 댓글도 있었음. 고국에 돌아가 아무 대접도 수입도 없이 지낸 사람이 많았는데, 한국 정부가 생존자들을 찾아가 훈장과 지원금을 줬다는 거임. 자녀 대학 학비와 체류 자격까지 나왔다는 대목도 있었음. 여기에 튀르키예 쪽에서 바로 토를 달았다. 참전용사 협회가 원래 있었고 생존자들은 국경일 행사에 나오며 방송에도 종종 나온다는 거임. 그 전쟁 덕에 나토에 들어간 게 컸다는 말도 붙었고. 협회는 챙겼어도 일반 사람들은 잘 몰랐다는 재반박이 다시 달렸음.
잊힌 전쟁이라는 말
다큐가 나오기 전에는 튀르키예 사람 대부분도 몰랐다는 댓글이 있었음. 튀르키예와 한국 기자들이 같이 만들었는데, 양쪽 국민 모두에게 이 전쟁이 의미를 잃었고 전사자들이 잊혔다고 느껴서 시작한 거라고 함. 이렇게 크게 터질 줄은 몰랐다는 말이 붙었음. 전쟁 당시에는 튀르키예 여단 규모가 커서 마릴린 먼로 공연까지 왔다는 얘기도 덧붙였음. 튀르키예가 한국전쟁에서 싸운 걸 이제야 알았다며 놀란 댓글이 여럿이었고. 이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자기가 세상에 없었을 거라고 쓴 사람도 있었다.
출처: reddit
번역 및 요약 과정에서 일부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해외반응 40
수집된 해외 반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