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 13척 이야기에 각국이 꺼낸 전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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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이 꺼낸 명량

레딧 AskTheWorld 게시판에 질문이 하나 올라왔음. 수적으로 밀렸는데도 이긴 기적 같은 전투가 자기 나라 역사에 있냐는 거임. 올린 사람이 먼저 명량해전을 꺼냈음. 1597년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 배 13척이 일본 수군 133척을 상대해 이겼다는 거임. 일본 수군 절반 넘게가 죽거나 다쳤는데 조선 쪽은 배를 한 척도 잃지 않았다고 썼음. 이걸로 일본의 보급선이 끊겼고 전쟁의 흐름이 뒤집히는 신호가 됐다고 봤음. 영화 얘기도 같이 적었음. 당연히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2014년 한국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는 거임. 그런데 과대평가된 영화라는 의견이 많다고 본인이 덧붙였음. 좁은 해협으로 적을 끌어들여 싸우는 묘사가 한국판 300처럼 느껴지는 영화라고 썼음.

트라팔가르가 그거다

영국 쪽에서 바로 답이 왔음. 트라팔가르가 자기들의 명량해전이라는 거임. 판을 뒤집은 전투는 아니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숫자를 댔음. 영국 함대 27척이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 33척에 밀렸는데, 배 한 척도 잃지 않고 상대 함대 대부분을 나포하거나 침몰시켰다는 거임. 그렇게 잡은 해군 우위가 이후 100년 동안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음. 오히려 트라팔가르가 워털루보다 더 큰 전환점이었다고 본 댓글도 붙었음. 나폴레옹을 무너뜨린 영국 얘기가 나오면 보통 워털루가 띄워지지만, 트라팔가르 덕에 나폴레옹이 영국을 직접 어쩌지 못하게 됐다는 거임. 그래서 그의 제국이 끝내 안전해지지 못했고, 해군을 우회할 방법으로 대륙봉쇄를 택했다가 오히려 제국에 해가 됐다고 봤음. 결국 러시아와의 충돌로 이어졌다는 얘기임.

자기편끼리 싸운 전투

숫자가 제일 웃긴 답도 있었음. 카란세베시 전투라며 10만 대 0이라고 적은 댓글임. 무슨 소린지 설명하는 댓글이 밑에 붙었음. 여러 민족과 여러 언어가 섞인 합스부르크 제국 군대가 잔뜩 취한 상태에서, 어느 쪽이 자기편인지를 두고 오해가 생겼다는 거임. 말이 안 통하니 더 그랬고, 그 문제를 자기들끼리 싸워서 풀었다고. 사상자는 150명에서 1만 명 사이로 기록마다 다르다고 했음. 같은 얘기를 다르게 쓴 댓글도 있었음. 여러 언어를 쓰는 군대가 자기들끼리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는 거임. 거기에 술을 붓고, 오스만군이 곧 올지 모른다는 공포까지 얹으라고. 그래서 혼란 속에 자기 군대를 자기가 두들겼고, 사흘 뒤 도착한 오스만군은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반응이었다는 얘기였음. 1788년이면 합스부르크 제국이었고 나중에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된 거라고 짚어 준 댓글도 있었음.

유럽에서 나온 이름들

유럽 쪽 사례가 제일 많이 올라왔음. 1757년 로이텐 전투를 꼽은 댓글이 있었음. 프리드리히 2세가 거의 두 배인 오스트리아군과 싸웠는데, 비스듬한 대형과 지형 지식으로 우위를 만들었다는 거임. 차량이 나오기 전 시대에 기동전을 쓴 드문 사례라고 봤음. 전투 전날 밤 장교들을 다 불러 전술을 설명하면서 성공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는 걸 분명히 해 뒀다는 얘기도 전했음. 같은 해 로스바흐에서도 프로이센이 비슷한 비율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이겼다는 댓글이 붙었고, 프로이센은 대부분의 전투를 수적 열세로 치르고도 거의 다 이겼다는 말도 나왔음. 1700년 나르바 전투를 꼽은 댓글은 둘이었는데 숫자가 조금씩 달랐음. 하나는 러시아군 3만 5천이 나르바를 포위했고 스웨덴군 1만 5백이 그걸 깼다고 적었음. 러시아군 8천에서 9천을 죽이고 700명과 대포 전부를 빼앗았는데 자기들 전사자는 667명이었다는 거임. 대북방전쟁 초기였고 칼 12세는 대부분의 전투를 이기고도 결국 전쟁에서는 졌다는 말로 맺었음. 다른 하나는 러시아, 폴란드-리투아니아, 작센, 덴마크-노르웨이가 한꺼번에 선전포고를 했고 자기 나라는 열여덟 살 소년왕이 다스리고 있었다고 썼음. 러시아가 4만 명과 대포 195문으로 나르바 요새를 포위했는데, 왕이 군대를 배로 보내고 강행군으로 몰아붙인 뒤 지친 병력을 그대로 이끌고 바로 공격했다는 거임. 자기 쪽은 1만 명에 대포 37문이었다고 했음. 1018년 플라르딩언 전투를 든 댓글도 있었음. 숫자는 흐릿하지만 제국군이 훨씬 적은 서프리슬란트 병력에게 제대로 깨졌다는 데는 연대기마다 일치한다는 거임. 1385년 알주바호타 전투도 나왔음. 14세기 말 포르투갈 왕이 아들 없이 죽고 외동딸이 카스티야 왕과 결혼한 상태였는데, 카스티야가 왕국을 차지하려 하자 포르투갈 사람들이 죽은 왕의 서자 형제를 왕으로 세웠다는 거임. 그래서 대규모 침공이 들어왔고 두 군대가 알주바호타에서 만났는데 포르투갈이 훨씬 큰 병력을 이겼다고 했음. 숫자를 붙인 댓글은 6600명 대 3만 1천 명이라고 적었음. 거기서 제일 유명한 이야기로 빵집 여인을 들었음. 키가 아주 크고 힘이 셌으며 손마다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고 전해지는데, 전투 뒤 자기 빵집에 숨어 있던 카스티야 병사 일곱을 혼자 죽였다는 얘기임. 후스 전쟁을 꼽은 댓글도 있었음. 농민들이 얀 지슈카를 앞세워 신성로마제국 십자군을 몰아낸 전투들이라는 거임. 십자군이 후스파가 부르는 노래를 보고 듣자 싸우지도 않고 달아났다는 전투도 있다고 했음. 1552년 에게르 공방전을 꼽은 댓글은 둘이었음. 17대 1로 밀렸지만 사기가 높았고 수류탄과 화약 폭탄을 영리하게 써서 오스만군의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버텼다는 거임. 지키던 쪽 지휘관들이 그 뒤에 항의하며 사임했다는 뒷얘기도 붙었음. 왕이 지원군을 안 보내서 버려진 줄 알고 장렬하게 죽을 작정이었는데, 정작 막아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는 거임. 1914년 체르와 콜루바라 전투를 든 댓글도 있었음. 오스트리아-헝가리 쪽 병력이 조금 더 많았고, 자기들 포병은 구경이 안 맞는 탄약을 받아 거의 작동하지 못했다는 거임. 장비 부족을 메운 건 유능한 참모진과 몇 년 전 발칸 전쟁을 겪은 농민 병사들이었다고 했음. 상대는 세르비아를 망신 주겠다고 벼르고 왔다가 땅 한 뼘 못 얻고 크게 졌다는 얘기임.

식민지에서 벌어진 일

유럽 세력을 상대한 쪽 사례도 여럿이었음. 18세기 콜라첼 전투를 꼽은 댓글이 있었음. 마르탄다 바르마가 이끈 트라방코르 왕국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이겼다는 거임. 아시아 왕국이 유럽 식민 세력을 상대로 거둔 첫 주요 승리로 자주 꼽힌다고 했음. 같은 지역의 다른 인물 얘기도 붙었음. 영국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인 왕이 있었는데, 영국이 병력도 장비도 앞서고 이름난 지휘관까지 데려왔는데도 이기지 못했다는 거임. 정면으로 붙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 영국 지휘관이 우리는 1000명과 싸우는 게 아니라 한 사람과 싸우고 있다고 말한 걸로 유명하다는 얘기도 전했음. 결국 병력을 계속 늘려 작은 왕국 하나를 누르려고 1만 4천 명 넘게 배치했다고 했음. 다만 결말은 다르다는 댓글이 붙었음. 위키백과에는 최종적으로 영국의 승리로 적혀 있다는 거임. 그래도 두 배 열세로 몇 년을 버틴 건 대단하다고 했음. 그 사람은 결국 붙잡혀 살해됐고 영국이 명예롭지 못한 방식으로 이겼다고 본 댓글도 있었음. 라 나발 데 마닐라 전투를 든 댓글도 있었음. 네덜란드가 포르모사를 차지한 뒤 필리핀까지 노렸는데, 그때 스페인령 필리핀은 상태가 형편없었고 수도는 큰 지진까지 맞은 뒤였다는 거임. 침공이 시작될 때 있던 갈레온선 두 척은 아주 낡아 썩어 가고 있었다고 했음. 그런데도 침공이 실패했고, 스페인 함장이 첫 전투에서 아무도 죽지 않으면 승리를 성모께 바치겠다고 서약한 일 때문에 교회가 이 전투를 기적으로 선포했다는 얘기임. 남아프리카의 블러드리버 전투를 길게 쓴 댓글도 있었음. 영국이 노예제 폐지 쪽으로 기울자 보어인들이 노예를 유지하려고 케이프 식민지를 떠났다는 데서 시작함. 동쪽으로 가서 여러 부족과 마주쳤고, 처음엔 농사를 짓고 수확물로 부족 군대를 먹이는 방식으로 합의를 봤다고. 그 무렵 줄루가 다른 부족들을 정복하며 세를 넓히던 중이었고, 보어 집단마다 다른 부족을 위해 농사를 지으면서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임. 그 글에 정정이 붙었음. 말레이시아 노예라고 쓴 부분을 보고 놀랐다는 말레이시아 사람의 댓글이었음. 말레이 노예를 말한 거 맞냐고 물었고, 작성자가 그렇다고 답했음. 케이프 말레이 인구가 지금도 꽤 크다고 덧붙였고. 숫자를 못 믿겠다는 댓글도 붙었음. 그 전투의 사상자 기록이 사실상 한 사람의 기록뿐인데 그 사람이 전쟁 담당 서기였다는 거임. 중립적인 출처가 아니라는 지적임. 1836년에 9천 명을 상대한 비슷한 전투의 사상자가 350명이었고, 1879년에 더 좋은 소총을 든 영국군이 압도당하기 전까지 죽인 수가 1천 명쯤이었다는 비교도 들었음. 그런데 더 느린 활강 머스킷을 든 464명이 어떻게 그 세 배를 죽였냐는 거임. 승리를 영원히 기념하겠다고 신과 맹약을 맺었다는 대목도 문제 삼았음. 로크스 드리프트 전투를 꼽은 댓글도 있었음. 병력 150명이 안 되는 작은 초소였는데, 그날 낮에 훨씬 큰 영국군을 이긴 줄루 전사들이 들이닥쳤다는 거임. 줄루 쪽은 보통 4천 명 정도로 추산되고, 앞서 이긴 영국군에게서 총기도 많이 노획해 화력에서도 앞섰다고 썼음. 그런데도 수비대가 버텨 냈다는 얘기임. 여기에도 정정이 붙었음. 로크스 드리프트를 친 줄루는 앞선 전투에 투입되지 않은 예비대였고, 명령을 어기고 나탈로 넘어온 쪽이라는 거임. 그들이 앞선 전투의 노획 화기로 무장한 건 아니었다고 했음. 그래도 미친 전투인 건 맞다고 덧붙였고. 마오리라고 밝힌 댓글도 있었음. 개별 전투 이름은 모르겠지만 조상들이 영국군을 꽤 괴롭힌 건 확실하다는 거임. 영국은 대포와 머스킷, 박격포를 갖췄고 자기 조상들은 머스킷 몇 자루뿐이었다고. 대신 파라고 부르는 요새를 만들었는데 나무 방책과 흙 둔덕, 참호를 갖춰서 오래 버틸 수 있었고, 위험해지면 뒤쪽 숲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고 했음.

20세기 전투들

가까운 시대 얘기도 많았음. 겨울전쟁의 수오무살미 전투, 그중에서도 라테 도로 전투를 꼽은 댓글이 있었음. 소련이 핀란드의 제일 좁은 곳을 끊어 둘로 나누려고 오울루 쪽으로 진격하려 했는데, 지형 때문에 라테 도로를 따라 긴 종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는 거임. 스키를 탄 핀란드 부대가 그 길을 여러 지점에서 끊었다고 했음. 사상자 숫자를 붙인 댓글도 있었음. 핀란드 쪽은 전사 310명, 부상 618명, 실종 90명이었고, 소련 기록으로는 사상자 4674명이라는 거임. 핀란드 추정으로는 소련군 7천에서 9천 명이 죽고 1300명이 포로가 됐다고 했음. 어느 쪽이 줄이고 어느 쪽이 늘렸는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음. 근처 겨울전쟁 기념물에 놓인 돌 1700개가 여기서 죽은 병사 한 명씩을 뜻하는데 핀란드와 소련 양쪽을 다 센 거라고 했음. 1966년 베트남전의 롱탄 전투를 든 댓글도 있었음. 호주 보병 중대 105명이 2천 명쯤 되는 북베트남군 대대를 상대했다는 거임. 유튜브에 좋은 다큐가 있고 영화도 있다며 예고편 링크를 붙였음. 그 밑에는 호주는 그 전쟁 자체는 졌다는 댓글이 달렸고. 2차 대전 때의 퐁 생루이 전투를 꼽은 댓글도 있었음. 벙커에 있던 프랑스 병사 열 명 남짓이 수천 명의 이탈리아군을 며칠 동안 막고 큰 피해를 입혔는데 프랑스 병사는 전원 살아남았다는 거임. 정작 프랑스는 독일에 졌고, 이탈리아가 벙커와 다리를 차지하기 전에 항복 명령이 내려왔다고 했음. 뒷이야기도 붙었음. 벙커 대포를 온전하게 유지하려고 올리브유를 썼다는 거임. 전쟁이 끝났다는 걸 설명하려고 이탈리아 쪽이 프랑스 장교들을 데려와야 했고, 마침내 항복할 때 문을 잠그고 열쇠를 가지고 나가 버려서 이탈리아군이 문을 폭파하고 들어가야 했다는 얘기임. 자도트빌 포위전을 꼽은 댓글도 있었음. 배경 때문에 더 대단하다는 거임. 유엔은 미국과 소련이 콩고의 우라늄을 두고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고 봤고, 어느 쪽이든 상대편에 우라늄을 팔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서로 위협한 상태였다고. 한편 콩고를 놓기 싫었던 쪽은 광산 독점을 위해 꼭두각시 정부를 지원했고, 유엔 평화유지군은 선출된 정부를 지키려고 들어갔다는 설명이었음. 브라질 사례도 둘 올라왔음. 하나는 몬테 카스텔로 전투임. 익숙하지 않은 겨울에 싸워 많이 죽었지만 결국 산을 차지했다는 거임. 자기들 2차 대전 전투 중 가장 많이 기억되는 전투이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 지역에 기념물을 세워 줘서 기쁘다고 썼음. 다른 하나는 1945년 몬테세 전투임. 브라질 원정군 병사 셋이 고립됐는데, 포위돼 빠져나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항복을 거부하고 싸우다 죽었다는 거임. 세 사람 이름을 다 적어 뒀고, 전해지는 얘기로는 독일군이 직접 묻어 주고 세 명의 브라질 영웅이라고 적은 십자가를 세웠다고 했음. 나폴레옹 전쟁 때의 푸엔히롤라 전투를 꼽은 폴란드 사람도 있었음. 제일 인상적인 전투도 아니고 폴란드에서 벌어진 것도 아니지만 제일 웃긴 축이라는 거임. 영국군이 남쪽에서 스페인을 되찾으려 상륙했는데 하필 폴란드 병사들이 지키는 요새 옆이었다고. 운 좋은 한 발로 포함을 침몰시켰고, 영국군이 대포를 설치해 놓고 지키지 않은 채 자리를 비우자 그걸 가져가 탄약을 터뜨렸다는 얘기임.

숫자와 시점 얘기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지 말자는 흐름도 있었음. 1242년 빙판 위의 전투를 꼽은 댓글이 있었음. 십자군 하면 예루살렘의 더운 사막을 떠올리겠지만 교황이 튜턴 기사단을 북쪽으로도 보냈다는 거임. 러시아가 동쪽에서 몽골 침공에 시달리는 틈을 타 서쪽에서 친 거라고 했음. 지휘한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스물한둘밖에 안 됐는데 이미 이름난 장군이었다고 썼음. 바로 반박이 붙었음. 러시아 역사의 많은 이야기가 그렇듯 이것도 제정과 소련 시절 선전으로 상당히 부풀려졌다는 거임. 당시 연대기 중에는 아예 언급조차 없는 것도 있고, 다른 연대기에는 호수 위가 아니라 근처에서 독일인 20명이 죽고 6명이 잡힌 작은 충돌로만 적혀 있다는 얘기임. 얼음이 깨져 빠졌다는 근거도 없고, 호수 고고학 조사에서 전투 흔적 자체가 안 나왔다고 했음. 그래도 이야기로는 좋다고 마무리했음. 숫자 규모를 두고 웃는 댓글도 있었음. 중국 전쟁사와 유럽 중세 전쟁사를 비교하는 밈을 좋아한다는 거임. 유럽 쪽은 기사 100명이 적 112명과 싸워 40명이 죽은 게 그 지역 역사에서 손꼽히는 전투로 남는데, 중국 쪽은 50만 대 80만에 60만이 죽은 게 지역사의 각주 한 줄이라는 식이라고. 본인도 과장이라고 했지만 중국 전쟁사의 추정 숫자가 워낙 말이 안 되고 사람 수가 부족한 적이 없었다는 얘기였음. 시점이 이상한 전투도 나왔음. 1812년 전쟁의 뉴올리언스 전투인데 전쟁이 끝난 뒤에 벌어졌다는 거임. 그 밑에는 미국 편에 붙은 사략선 선장 사연이 길게 달렸음. 미국이 그의 근거지를 급습해 배를 빼앗고 부하들을 잡아간 적이 있는데, 나중에 다시 합류 제안을 받자 부하 전원 석방을 조건으로 걸고 빼앗겼던 배를 타고 싸웠다는 얘기임. 묵덴 전투를 꼽은 댓글도 있었음. 일본군 24만 명이 러시아군 36만 명을 상대한 러일전쟁 마지막이자 최대 전투였다는 거임. 1, 2차 대전을 빼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였다고 했음. 이 전투와 쓰시마 해전에서 이기면서 일본이 유럽 열강에 맞먹는 군사력을 가진 제국주의 국가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고 봤음. 야르무크 전투를 든 댓글도 있었음. 라시둔 칼리파국이 로마 제국군을 상대한 전투인데, 수적으로 밀리면서 비잔티움이 결전을 위해 모아 놓은 최정예 부대를 상대했다는 거임. 이 패배로 비잔티움이 레반트에서 물러났고 북아프리카까지 문이 열렸다고 썼음.

가평 전투 이야기

한국전쟁 얘기도 나왔음. 가평 전투를 꼽은 캐나다 쪽 댓글임. 캐나다군이 계곡 하나를 지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거임. 훨씬 큰 병력을 상대할 때 흔히 하던 대로 싸우면서 물러나는 대신, 1차 대전식 참호 전술로 파고들어 버텼다고 했음. 숫자는 이렇게 적었음. 캐나다군 700명을 중국군 2만 명 규모 부대가 쳤고 비율로는 30대 1이었다는 거임. 옆 고지를 맡은 영국군과 앤잭, 미군이 물러나면서 사방으로 포위됐고, 멀리서 오는 뉴질랜드 쪽 지원 말고는 증원도 항공 지원도 끊겼다고 했음. 다른 댓글도 가평을 꼽았음. 다만 자기는 뉴펀들랜드 사람이라 굳이 고르자면 몽시르프뢰 쪽이라고 덧붙였고.
출처: red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