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씻어 먹던 아이

레딧 TIFU 게시판에 몇 년 전 일인데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는 글이 올라왔음. 글쓴이는 백인과 한국인이 섞인 집에서 자랐음. 어릴 때부터 김치, 매운 라면, 고추장을 먹었고 살사나 태국 음식, 인도 음식도 자주 먹었다고 함. 어릴 땐 김치가 너무 매워서 엄마가 물에 헹궈 줬다는 게 이 사람 기억임. 지금은 안 헹군 김치도 맵다는 생각이 아예 안 든다고 함. 백인은 매운 걸 못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자기 집 백인 쪽 가족이 그랬음. 그래도 좀 유난 떠는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임. 자꾸 먹으면 어느 정도는 익숙해진다고 믿었다고 함.

후추가 맵다던 친구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보는 친구 무리가 있고, 그중 한 명이 매운 걸 정말 못 먹었음. 글에서는 B라고 불렀음. 같이 요리할 때 매운 이탈리안 소시지가 들어가는 레시피가 나오면 그건 자기한텐 너무 맵다며 일반 소시지로 바꿨다고 함. 후추가 좀 많이 들어가면 '오 이거 좀 맵다'고 했다는 거임. 나머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쳐다봤다고 함. 후추가 맵다니, 하면서. B는 웃어넘기면서 자기한테는 감당할 만한 정도로 매운 거라고 답했다고 함. 글쓴이는 그때까지도 유난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음.

0단계 버터치킨

코로나가 끝나고 졸업 후 처음으로 다 같이 모이기로 했음. B네 집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했고, 저녁으로 인도 음식이 당긴다는 사람이 많았음. B는 시골 마을 출신이라 다른 나라 음식을 접할 일이 별로 없었고 지금은 큰 도시에 살고 있었음. 직장 동료의 삼촌 부부가 인도 식당을 새로 열었는데 괜찮다더라고 B가 먼저 얘기를 꺼냈음. 다만 인도 음식은 처음이고 맵다는 소문이 있어서 걱정된다고 했음. 대부분 인도 식당은 맵기를 조절해 주고 난이나 사모사처럼 안 매운 것도 있다고 다들 말해줬음. B도 새 음식을 먹어보는 게 재미있겠다며 가기로 했음. 식당에서 첫 인도 음식으로 버터치킨을 추천했음. 정통 커리는 아니어도 거의 다 좋아하고, 무엇보다 커리 중에 제일 안 매운 축이라는 게 이유였음. 주문할 때는 이 사람이 매운 걸 못 먹으니 아주 순하게 해달라고 따로 얘기했음. 음식이 나왔는데 B가 계속 깨작거리기만 했음. 맛이 없냐고 물으니 맛은 있는데 좀 맵다고, 그래도 먹을 만하다고 답했음. 몇 입 더 먹더니 못 먹겠다고, 너무 맵다고 했음. 그때 보니 B가 땀을 흘리고 있었음. 얼굴이 빨개졌고 입술은 고추를 직접 문지른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고 함. 맵기 단계가 잘못 나온 줄 알고 글쓴이가 그 커리를 한 입 먹어봤음. 그런데 부드럽고 달았고 매운맛은 하나도 없었다고 함. 자기가 이상한가 싶어서 나머지 친구들한테도 다 먹여봤는데 다들 전혀 안 맵다고 했음. 결국 B는 커리를 포기하고 난만 조금 뜯어 먹었음. 나와서 치즈버거를 사줬다고 함.

알레르기 아니냐는 댓글

제일 많이 나온 반응은 그거 알레르기 아니냐는 거였음. 비슷한 경험담이 줄줄이 붙었음. 자기 친구는 아무것도 안 뿌린 토르티야 칩이 맵다고 말했다가 옥수수 알레르기인 걸 알았다는 댓글이 있었음. 붓지도 두드러기가 나지도 않고 입만 화끈거렸다는 거임. 딸이 '키위 먹으면 입술 저리잖아' 하고 말했는데 친구들이 다 쳐다봐서 알게 됐다는 댓글도 있었고. 남편이 딱 그랬는데 매운 게 원래 키위 맛인 줄 알았다는 댓글도 붙었음. 형제가 사워크림 알레르기인 걸 그렇게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음. 검사를 해도 다 안 잡힌다는 얘기도 나왔음. 알레르기가 심해서 전체 검사를 네 번이나 받은 사람이 서른 살에 펙틴, 서른다섯에 핑크 페퍼콘 알레르기를 알게 됐다고 적었음. 둘 다 검사가 아니라 먹어보고 알았다는 거임. 꽃가루 같은 공기 중 알레르기 검사에서는 먹는 것에 대한 항목이 얼마 안 들어가서 향신료 알레르기는 쉽게 놓친다는 설명도 붙었음. 음식 알레르기는 아예 다른 검사고 보험도 잘 안 되는 데다 위양성이 많다는 댓글도 있었음. 구강 알레르기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댄 댓글도 있었음. 입술이 붓고 안 매운 음식이 맵게 느껴지는 게 전형적인 증상이라는 거임. 나무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으면 후추, 펜넬, 커민, 토마토에 교차반응이 생기고 고추도 토마토와 같은 과라고 적었음. 보통은 익히면 원인 단백질이 깨지는데 심하면 익힌 것도 반응한다는 얘기였음. 나이 들면서 생기기도 한다는 댓글도 있었음. 십 대 땐 생사과랑 바나나만 입이 간지러웠는데 스물여섯인 지금은 거의 모든 과일과 피스타치오까지 목이 조이는 알레르기가 됐다는 거임. 서른 중반에 마늘 아나필락시스가 생겼다는 사람도 있었음. 글쓴이는 여기에 답을 달았음. 알레르기를 의심해서 본인한테 물어봤지만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거임. 혀가 붓거나 저린 게 아니라 땀을 흘리고 물을 들이켜는 전형적인 매운 반응이었다고 적었음. 애초에 후추도 맵다고 하는 사람인데 그동안 자기가 유난이라고 생각했던 거라고 했음.

캡사이신 과민이라는 설명

알레르기가 아니라 다른 거라고 본 댓글도 많았음. 캡사이신 과민이라는 게 실제로 있다는 댓글이 추천을 많이 받았음. 알레르기는 아니지만 혀가 화끈한 수준을 넘어서 땀이 나고 입술이 붉게 부어오르는 접촉성 피부염 같은 증상이 나온다는 거임. 자기가 딱 그렇다는 댓글도 있었음. 캡사이신뿐 아니라 후추를 넣었는지도 알아챈다는 거임. 알레르기 검사를 여러 번 받았는데 캡사이신도 피페린도 알레르기가 아니었고, 그냥 과민이라고 했음. 동네 인도 식당에서 순한 걸 먹어도 땀나고 얼굴이 빨개지고 숨쉬기가 힘들다는 거임. 사촌도 똑같다고 적었음. 수용체 얘기까지 간 댓글도 있었음. 캡사이신을 느끼는 수용체는 TRPV1 하나뿐인데 그 수용체에도 더 민감하거나 덜 민감한 변이가 있다는 거임. 닭의 TRPV1 단백질에서 아미노산 하나만 바꿔도 캡사이신 감수성이 생긴다는 논문을 찾았다고 적었음. 슈퍼테이스터라는 말도 나왔음. 유전자에 달린 거고, 관련 음식 목록을 읽고 나서야 자기 인생이 설명됐다는 댓글이었음. 제일 순한 음식을 한 입만 먹어도 입이 타는 느낌이라는 거임. 자기도 슈퍼테이스터라며, 이 사이에 낀 후추 조각을 씹기만 해도 통증이 온다고 적은 댓글도 있었음. 펜넬 얘기도 나왔음. 펜넬에 든 아네톨이라는 성분이 아니스 향을 내는데, 슈퍼테이스터한테는 그게 타는 듯한 쓴맛으로 읽힌다는 거임. 이탈리안 소시지가 유독 힘들었던 이유가 펜넬이었다는 걸 인도 음식 성분표를 보고 알았다는 댓글도 있었음. 이 사람은 직장에서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제일 매운 음식이 나초 치즈라고 농담한다고 함. 다만 커민은 좋아해서 집에서 자주 쓴다고 적었음. 여기엔 펜넬은 안 매우니까 그건 알레르기 같다는 답글이 붙었고.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 반응이라고 정리한 댓글도 있었음. 통증 수용체를 혹사시켜서 둔하게 만들 수는 있는데, 그건 유리 조각이나 레고를 밟고 다니면서 발의 통증 수용체를 혹사시키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거임.

생강도 딸기도 맵다

고추가 아닌 걸로 반응한다는 경험담도 여럿이었음. 독일에 사는 인도 사람이 쓴 댓글이 있었음. 포틀럭에 인도 음식을 가져가는데 참석자 대부분이 매운 걸 못 먹는 독일 사람이라 고추도 고춧가루도 후추도 아예 안 넣었다는 거임. 그런데 한 명이 와서 맵다고 했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한참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생강이 좋았다고 말하는 순간 이해가 됐다고 함. 자기한테 생강은 매운 게 아니라 그냥 양념인데 누군가한테는 그게 이미 과하다는 거임. 고추가 아니라 양념 자체가 매운 사람도 있다는 댓글도 있었음. 딸기가 맵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는 눈으로 본다는 댓글도 있었고. 후추가 맵다고 하면 이상하게 본다는 댓글도 있었음. 커리는 애초에 고추로 만드니까 순한 것도 자기한텐 맵다는 거임. 마늘, 파프리카, 후추, 허브는 잔뜩 넣어도 괜찮은데 순한 파히타 양념이 한계라는 사람도 있었음. 중국에 사는 사람 댓글도 있었음. 고추에 민감해서 가끔 목이 조여오는데, 에피펜을 쓸 정도는 아니어도 무섭다는 거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반응이 와서 마라 훠궈나 매운 가재 파는 식당은 아예 못 간다고 함. 사람들이 밖에서 먹을 때 못 끼는 일이 많고 한국 음식도 상당수 못 먹는다고 적었음. 여기엔 사천성만 아니길 바란다는 답글이 붙었음. 반대로 좋아하는데 몸이 못 받는다는 댓글도 있었음. 한국 음식과 인도 음식을 좋아하는데 음식 쪽이 자기를 안 좋아한다는 거임. 물을 마셔도 속이 쓰리다고 적었음. 집에서 버터치킨을 만드는데 향신료를 조심해야 하고, 아내 조부모가 텃밭 고추를 줬을 때 맵다는 말을 안 해줘서 한 입 먹고 기침하며 빵을 찾았다는 사람도 있었음. 반대 방향으로 바뀐 사람도 있었음. 예전엔 후추도 매웠는데 지금은 매운 걸 즐긴다는 거임. 코로나에 처음 걸린 뒤로 미각과 후각이 완전히 안 돌아왔는데 그 덕인 것 같다고 적었음.

안 믿어준 게 문제

친구한테 사과는 했냐는 댓글이 달렸고, 글쓴이는 했다고 답했음. 매운 걸 못 먹는 사람들을 새로 존중하게 됐고, 억지로 먹인 것도 아니라고 적었음. B가 먼저 새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했고 이게 너무 매울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다는 거임. 그래서 남이 자기 음식 취향이나 알레르기를 말하면 믿어주는 거라는 댓글이 있었음. 자기가 B와 같은 처지라는 사람도 있었음. 알레르기는 없다고 적었음. 못 먹는다고 말해도 어떤 반응이 눈에 보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안 믿어준다는 거임. 몰래 매운 걸 먹여놓고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음. 유난 떠는 게 아니고 그냥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며, 통증의 매캐한 맛 말고는 아무 맛도 안 난다고 적었음. 알레르기라고 우기는 댓글들이야말로 글쓴이가 배웠다는 그 실수를 그대로 하는 거라는 지적도 있었음. 내 경험과 다르다는 이유로 남이 거짓말한다고 가정하는 거라는 얘기임. 고추든 후추든 마늘이든 매운 성분이 들어 있으면 어떤 사람한테는 맵게 느껴지는 것뿐이고, 나한테 안 맵다는 건 내가 그 물질에 덜 민감하다는 뜻이라고 적었음. 다들 맛을 봤으니 안 맵다는 게 확인된 거 아니냐는 말에도 반박이 붙었음. 매운 걸 잘 먹는 사람은 실제 맵기를 판단하는 능력이 심하게 떨어진다는 거임. 순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무것도 안 들어갔다는 보장도 아니라고 했음.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자기 얘기도 적었음.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늘 놀림거리라는 거임. 후추를 썼는지 맛으로 알고, 고추나 다른 향신료가 들어가면 입술이 벌게지고 아파서 매번 립밤을 발라야 하는데 그것도 아프다고 함. 2주 전에는 어머니가 만든 땅콩소스를 한 입 먹고 아파서 몸이 젖혀지고 눈물이 났는데, 식탁의 다들 이해를 못 했다고 적었음.
출처: reddit